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3세 (문단 편집) ==== 이혼 후 ==== [[다이애나 스펜서]] 사후 [[불륜]]상대인 [[카밀라 파커 보울스]]와 재혼했는데, 당시 이에 대한 영국의 여론은 정말 좋지 않았다. 심지어 이 이혼 때문에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찰스 왕세자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. 본인들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재혼 후에는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했다. 당시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다이애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기 때문에, 그 반대급부로 카밀라의 인기는 매우 낮다. 재혼 후 한 설문조사에서는 [[엘리자베스 2세]] 사후 왕위를 찰스 왕세자의 장남 [[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]] 왕세손이 잇기를 바란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,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찰스 자신의 매력 없음과 함께 [[카밀라 파커 보울스|카밀라]]와의 재혼이 이유로 꼽힐 정도다. 윌리엄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아들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. 그래도 2010년대 기준으로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회복했다. 주목할 부분은 국서 [[에든버러 공작]]인 아버지가 2017년 그의 96세 생일부로 왕실 공식 업무에서 은퇴하면서, 여왕의 의회 연설을 비롯한 제 행사에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. 영국 왕정에서 상징성 있는 어머니의 후광 효과를 옆에서 받으며 평탄한 왕위 계승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. 찰스는 많은 자선사업을 관장했는데, 그 중 하나가 [[지구 온난화]]였다. 문제는 [[브렉시트]] 후 영국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[[미국]]이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[[도널드 트럼프]]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다. 찰스 왕세자는 평상시에도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생태계 보전에 큰 관심을 가져서, 트럼프 대통령이 정식으로 영국을 방문하면 "훈계"하지 않을까 트럼프 측에서 걱정했다고 한다. 때문에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찰스 왕세자 대신 [[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|윌리엄 왕세손]]이나 [[해리 왕자]]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. [[https://www.independent.co.uk/news/world/americas/donald-trump-prince-charles-climate-change-environment-uk-visit-queen-a7551701.html|출처1]][[https://www.theguardian.com/uk-news/2017/jan/29/prince-charles-climate-change-trump-visit-britain|출처2]] [[https://www.businessinsider.com/lord-ricketts-theresa-may-queen-difficult-position-donald-trump-2017-1|Business Insider]]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가 [[도널드 트럼프]] [[미국 대통령]]을 정식으로 맞이할 것이며, [[무슬림]] 입국 거부와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뜻깊은 토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.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찰스에 대한 여론이 좋아졌었다. 그러나 실제 트럼프의 2018년 영국 방문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모두가 만남을 거부해 트럼프는 여왕만 만나고 돌아왔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newsdaily.kr/69092_53459_2616.jpg|width=100%]]}}} || 1992년 11월에 [[한국]]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. 이때의 한국 방문은 전처인 [[다이애나 스펜서]]와 별거하기 전에 마지막 부부 동반으로 수행한 공무였다.[* 당시 부부 동반 한국 방문은 [[엘리자베스 2세]] 여왕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. 왕세자 부부의 불화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부부가 동반으로 해외를 방문해 공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부부 사이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. 이 방법이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초기 에든버러 공의 염문설이 돌 때마다 써먹으며 효과가 있었기 때문.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기대와는 달리,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은 더 곪아갔고, 결국 한국 방문 후 별거로 이어졌다.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hongkongfp.com/1-12.jpg|width=100%]]}}} || 1997년 7월 1일 [[홍콩 반환]]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. 왼쪽은 당시 [[중국 주석]] [[장쩌민]], 오른쪽은 당시 [[영국 총리]] [[토니 블레어]]. 이날 행사에는 1980년대에 [[홍콩 반환]] 원칙에 합의한 양국 정상 가운데 [[마거릿 대처]] 전(前) 영국 총리는 참석했지만, 중국의 [[덩샤오핑]]은 아쉽게도 5개월 전 사망했다. 대신 덩샤오핑은 유언에 따라 화장된 유해가 [[홍콩]]에 뿌려졌다. [[엘리자베스 2세]]는 이때 홍콩에 방문하려고 했지만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가 거론되어서 찰스 왕세자가 대신 온 것이다.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홍콩 반환 후로도 25년을 더 살았다. 다만 고령일수록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기는 하다. 사진에 나온 장쩌민 주석 역시 엘리자베스 2세와 동갑인 1926년생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한 후 2022년 11월 30일에 사망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